메인으로 이동 게시판 보도기사

보도기사

사건이 빚진 아이들<하> ‘범죄자 자식’이 된 아이, 기댈 곳은 ‘운’밖에 없었다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2-07-26 조회수 : 407
경향신문 일러스트|김상민 기자

경향신문 일러스트|김상민 기자

만 18세. 은지(가명)가 두 동생의 보호자가 되던 때의 나이다. 삼남매가 의지할 유일한 어른이던 엄마가 수감돼 아이들은 양육자를 잃었다. 은지의 엄마는 이혼 후 친척들과도 관계를 끊었다. 남겨진 아이들을 구한 건 지자체 관계자였다. “기초생활수급 가정이었던 덕에 ‘발굴’이 그나마 쉬웠다”고 했다. 가정위탁을 하려면 보호자 나이가 만 25세 이상이어야 하지만 추가 지원금 30만원을 받아 아이들이 ‘먹고 살 수 있게’ 지원하려면 고3인 은지를 보호자로 세워야 했다. 둘째 동생은 고등학교 2학년, 막냇동생은 초등학교에 막 입학했을 무렵이었다. 엄마가 출소할 때까지 은지는 동생들의 위탁 보호자로 1년여를 지냈다.

아동 지원기관 관계자들은 은지를 두고 “운이 좋았다”고 했다. 피해자 보호 업무를 담당한 경찰 관계자는 “경찰 조사 단계에서의 지원은 범죄 피해 가정으로 대상이 한정돼 범죄자 가정의 경우엔 발굴과 지속적인 지원이 쉽지 않다”고 했다. ‘한부모가족 지원법’ ‘국민기초생활보장법’ 등 개별법의 수혜대상 요건을 갖추지 않는 이상 사례 개입이 어렵다는 것이다. 부모의 수감으로 경제적·정서적 위기를 맞고도 복지 사각지대에 남겨진 아이들이 많은 이유다.

수용자 자녀 수에 대한 기관별 집계차도 사각지대를 짐작하게 한다. 국내에서 수용자 자녀의 실태를 처음 조사한 건 2017년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당시 수용자 자녀 수를 연간 약 5만4000명으로 파악했다. 반면 법무부가 지난해 4월 실시한 수용자 미성년 자녀 현황 조사에선 수용자 자녀 수가 1만2167명으로 집계됐다. 기명조사인데다 응답 거부율이 23.3%에 이르러 실제론 더 많은 미성년 자녀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보건복지부가 파악한 2020년 보호대상아동 신규 발생 5053명 중 수용자 자녀는 166명에 그쳤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아이들은 심연으로 가라앉는다. 그들의 발목엔 낙인이 족쇄로 채워졌다. 부모의 수감으로 오랜 방황을 겪었다는 정빈씨(27)는 “그 사람(아버지)이 상해치사로 수감됐는데, 동네에서 벌어진 사건이라 ‘범죄자 자식’이란 소문이 났다. 중학교 내내 왕따를 당했다”고 했다. 어머니가 고정 수입을 유지해 경제적 타격은 크지 않았지만 마음의 상처가 컸다. 고등학교는 입학하고 6개월 만에 자퇴했다. “집에 가니까 (아버지가) 있더라고요. 한 공간에 있기 싫었어요. 자식은 부모 보고 배운다는데. 닮게 될까봐 무서웠어요.” 그렇게 집을 나왔고, 다시는 나고 자란 동네로 돌아가지 않았다.

사단법인 아동복지실천회 ‘세움’의 이경림 대표는 “부모와 자녀를 동일시하는 사회적 편견이 수용자 자녀에 대한 낙인을 강화한다”고 지적한다. 세움은 국내 최초로 수용자 자녀·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2015년 설립된 단체다. 이 대표는 “수용자 자녀 관련 캠페인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반응이 ‘피해자 자녀도 제대로 못 돕는데 왜 범죄자 자녀를 도와야 하느냐’ ‘세금 아깝다’였다”며 “이런 반응은 아이들 스스로가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기도 전에 ‘틀’에 갇혀 성장하지 못하도록 한다”고 말했다.

수용자 자녀 지원의 경우 ‘신청주의’의 한계를 넘어 적극적으로 발굴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공익사단법인 법무법인 ‘두루’의 강정은 변호사는 “차별과 낙인 때문에 위기상황에 처한 아이들이 부모가 교정시설에 있다는 말을 꺼내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교정시설 입소 이후가 아닌 체포·수사 단계에서부터 자녀의 존재 여부를 파악해 관할 지자체의 아동보호팀과 연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최대한 빨리 사례 개입이 이뤄지는 게 중요하다”면서 “장시간 방치될 경우 복합적인 어려움을 겪어 아이 역시 범죄의 유혹에 빠지거나 범죄 피해 당사자가 되기도 한다”고 했다.

법무부의 수용자 자녀 발굴 사업은 이제 막 걸음마 단계다. 2020년 6월 ‘수용자 자녀 인권 보호 태스크포스(TF)’가 출범했다. 지난해 8월 서울지방교정청에 ‘수용자 자녀지원팀’을 시범 신설해 보호자 없이 혼자 생활하는 아동 48명을 긴급 지원했다. 올해는 전국 4개 지방교정청으로 사업을 확대한다. 지원 대상에 포함되면 긴급 생필품 제공, 민간단체 지원 연계, 멘토링·상담 등이 이뤄지며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소지한 전담직원이 부모 출소시까지 가정을 모니터링한다. 지원 예산 약 2억원이 올해 처음 편성된 것도 유의미한 변화다. 위기상황에 놓인 아동 약 400명을 도울 수 있는 규모다.

지난해 추석 연휴를 앞두고 미혼모 A씨가 법정구속됐다. 집에는 13살 아이가 홀로 남겨졌다. A씨는 “아이를 도와달라”며 애원했다. 수용자 자녀지원팀을 통해 즉각 현장 방문이 이뤄졌고, 아이는 구조돼 보육시설로 연계됐다. 정성훈 법무부 사회복귀과 계장은 “과거엔 이같은 상황에 개입할 근거가 없었다”며 “지원팀이 발족하면서 사례 개입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시범 운영 8개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출소 후 지원에 대한 감사 편지를 보내는 수용자도 있었다”며 “아동이 잘 지내고 있다는 연락을 받을 때마다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구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법무부의 이런 움직임이 탄력받기 위해서라도 법률적 근거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미국은 2008년 제정한 ‘두 번째 기회법‘에 따라 기금을 마련해 수용자 자녀를 지원한다. 영국은 ‘유럽인권조약’, ‘교도소 규정’ 등에 근거해 수용자 가족을 위한 무료상담 전화 설치, 면회 비용 지원사업 등을 실시하고 있다. 국내에선 ‘수용자 자녀 보호 3법’(형집행법·형사소송법·치료감호법 개정안) 등 관련 법안이 발의 1년이 넘도록 국회에 잠들어 있다. 이경림 대표는 “투표권이 없는 아동의 관련 법안은 의원들의 관심도 적다”며 “수용자 자녀 이슈는 그 중에도 소외돼 있다”고 지적했다.